프로그래밍 교육 콘텐츠 기획자 및 강사 2년차
Chapter1. 책을 만들다.
2018년은 내가 프로그래밍 교육을 직업으로 가진지 2년 차되는 해였다. 2016년에는 코딩 클럽이라는 비영리단체에서 교육 활동을 했고, 2017년에는 grepp이라는 회사에서 codly 서비스의 교육 콘텐츠를 만들었다. 2017년 12월에 지금 다니는 회사에 입사하였으니 1년을 조금 넘긴 기간동안 지금의 자리에 있는 셈.
올해 내가 맡은 일은 수업할 때 선생님과 학생들이 사용하는 교재를 만드는 것이었다. 우리 회사는 내년(2019)부터 본격적인 스케일업을 준비하고 있어서 본사는 물론 파트너쉽 지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일을 맡기 전 학생들과 수업을 많이 할 수 있는 교육팀, 출판 교재를 만드는 교재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졌는데 난 교재팀을 선택했다. 이유는 즉슨 판매되는 상품, product 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핸드폰, TV, 대부분의 기계를 만들 때 스펙을 정해서 개발한 뒤 테스트하고 다시 수정하고 테스트하고 x1000을 무수히 반복해서 가치있는(=판매 가능한) 최종 결과물이 만들어지는데, 나도 코딩 교육이라는 분야에서 나 스스로의 또는 팀의 결과물을 원했다. 본사에서만 사용하는 콘텐츠가 아니라 모든 지점의 모든 선생님, 모든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는 책. 2019년 3월에는 지금까지 만들었던 6권의 책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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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 종이책을 만든 다는 것
사실 난 1년 반쯤 전부터 종이책을 읽지 않지만(너무 보고싶은 책인데 ebook이 없는 책을 제외하고는) 우리의 비즈니스에는 종이책인 교재가 필요했다. 이렇게 결정된 이유를 주관적으로 유추해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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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타겟은 교사와 초등학생이다. 대다수의 초등학생들은 아직 온라인에 있는 텍스트를 정성적으로 받아드리는데 무리가 있으며 수업을 준비하는 교사들도 책이라는 매개체로 수업을 준비하는 일이 익숙하기때문이다. 타켓이 익숙한 제품을 만드는 것, 이보다 중요한 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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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교육 환경, 인프라, 나의 영역이 아닌 비즈니스에 관련된 여러가지 계약 등..
위와 같은 이유들로 디지털을 알고 있음에도 아날로그책을 만들게 되었고 그 과정은 나에게 꽤나 새로우면서도 도전적이었다. 책 만드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편집자가 왔고 우리는 한 팀으로 일했다. 내가 초안을 쓰고, 피드백을 받고, 다시 수정하고 피드백 받고 x1000 디자인 되어 나오면 다시 피드백 & 수정하고, 시범 수업하고 다시 피드백 & 수정하고…말 그대로 완벽 을 향해 가는 과정이었다.
편집자와 나는 아주 짧은 주기의 피드백을 주고 받았는데 이 일을 통해 배운 점 중 하나는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타인의 다른 시선을 아주 잘 활용해야 하는 것이다. 때로는 내가 긴 템포로 차분히 기획하고 고민하고 다듬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또 어떨 때는 눈 딱 감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로 못봤던 오류들을 찾아내고 다르게 생각되는 것들을 최대한 미리 공유함으로써 문제로 여겨지는 것들은 해결하고 밀고 가야할 것들은 그대로 간다. 이 과정을 통해 책을 사용하는 사람(교사, 학생)으로 하여금 오해를 줄일 수 있다. 프로그래밍적으로 하면 UI, UX 오류를 방지하는 일이라고 할까나?
다시 말하면 이 작업은 수많은 반복의 과정 이다. 큰 오류부터 오탈자 하나까지 찾아내기 위해 눈이 빠지도록 이 과정을 반복하는 일. 나는 책에 들어가는 콘텐츠를 구성하는 일은 매우 좋아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책이라는 형식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일들 중 일부가 나에게는 중요하다고 여겨지지 않았다. 예를 들어 사소한 오탈자를 모두 찾아 내는 일,그리고 이 수정을 위해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야 하는 일 등 말이다.
만약 웹에 배포된 책이였다면 간단한 수정은 내가 git commit한 번으로 해결하고, 큰 수정만 디자이너의 손을 빌리면 될 것 같았다. 디자이너와 기획자가 세부적인 수정 작업을 위해 주고 받는 시간을 줄이면 결과물을 더 빠르게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여러가지 생각들로 뿌듯함과 자괴감 사이를 롤러코스터 타긴 했지만 분명한 사실은 내가 만든 결과물로 교사와 학생 모두 만족스럽게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업을 준비하고 이끄는 교사의 불편함과 어려움을 줄여줄 수 있다면, 일반적인 학생들이 수업에 더 적극적이면서 안정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있지 않을까?2019년 초반까지도 마무리해야 하는 일련의 작업들이 남아있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해 유종의 미를 거두기를.
Chapter2. 나를 중심으로 했던 교육에서 학생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
내가 프로그래밍 교육을 시작한 이유는 스스로가 알고 있는 지식을 남들보다, 남들에게 더 잘 설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부 시절 나에게 프로그래밍은 어려웠고 현재의 아이들은 프로그래밍을 배우는게 필수가 될 터이니 교육을 해보자 했다. 비영리단체 활동부터 1년차 시기까지는 아이들의 눈 높이에 맞춰 대화하는 방법, 집중을 유도하는 수업 방식 등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스킬들을 배웠다. 그리고 2년차, 교육 현장의 주인공은 교사가 아니라 학생이라는 점을 인정한 후로 이전에는 안보였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수업료를 지불하고 수업을 들으러 온 학생들이기 때문에 교사는 준비되어 있는 콘텐츠와 강의 자료를 성심성의껏 지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수업의 흐름과 분위기를 좌지우지 하는 요소는 수업에 참여한 아이의 본래 성향, 오늘의 컨디션이다. 난 그 파도에 휘말리면 안됐고 이끄는 선장이 되어야 했다. 이끌기 위해서는 비장한 태도로 휘몰아 치는 방법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학생 개개인의 표정과 태도, 코드를 치는 손 등을 면밀히 관찰하고 1) 질문을 던져주는 일과 2)기다려주는 일 3) 그 사이에 정보를 전달하는 일을 알게 모르게 끼워넣는 일이다. 주연 보다는 조연이 되기 위해 힘을 빼야했다. 지금은 굉장히 무덤덤하게 글을 쓰고 있지만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굉장히 힘들었다. 왜냐하면.. 노력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종교는 없지만)하느님. 내가 주인공이 되지 않고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요? 시간을 두고 HTML, CSS, Python을 배울 자신은 있었지만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 어른이 되야 하는 일은 너무 거대하게 느껴졌다. 남의 성장을 돕고 싶긴 하지만, 나도 내 성장을 위한 욕심이 너무 많은게 문제였다. 너희와 나는 함께 나아갈 수 있을까?
책을 만들면서 매주 토요일에는 수업을 했다. 난 주로 파이썬 기본 문법 수업과 pygame을 만드는 수업을 했는데 수업 준비와 별개로 파이썬은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래밍 언어고, 꾸준히 공부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수업 시간이 좋았다. 매 수업마다 내가 스스로 지키고 있는 규칙은 학생들에게 교안에 캡쳐되어 들어가있는 코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라이브 코딩으로 알려주고 실행 결과를 바로 보여주는 것 이었다. 과제도 손 코딩으로 답을 적어오라고 하지 않고, 파이썬 파일로 만들어서 실행해서 오라고 했다. 번지르르한 말들로 개념적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몇 줄의 코드를 짜는게 더 중요하니까. 프로그래밍의 매력은 오류를 뿜더라도 내가 쓴 코드대로 동작하는 프로그램 아니겠는가? 코드를 고쳐가며 완성해 나가는 기쁨. 아이들도 그 과정에서 즐거움과 배움을 느꼈으면 했다.
Chapter3. 그리고 다시, 나.
학생들에게 창업가가 되라고 말하기 전에 나 먼저 창업가가 되고 싶다. 세상에 가치있는 일을 만들어내고 싶고, 재화를 벌고 싶다. IT 기술로 서비스를 만드는데 참여하여 협업을 배우고, 기술적인 스킬을 업그레이드하고 싶다. 그렇게 살아가며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애쓰고 싶다. 이런 현장의 경험이 쌓인 후에야, 내가 단단히 설 수 있지 않을까? 생산적이고 효율적이면서도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